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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자리를 벗어나 기꺼이 다시 처음으로 - 소아청소년과 이경석 교수

작성일
2026-10-06

[소아청소년과 이경석 교수]

 

의사를 꿈꿔본 적 없던 문과생이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됐다. 

아이들을 진료하면서부터는 거리의 구조물을 보며 아이에게 위험하지 않을지 생각하고, 

연구를 하면서는 더 나은 소아 보건의료정책을 만들 방법을 고민한다. 


최근에는 소아심장 전문의가 부족한 현실을 마주하면서 해외연수 대신 소아심장 수련을 선택했다. 

익숙한 분야에 머무르기보다 필요한 곳에서 자신의 몫을 찾는 이경석 교수의 이야기다.

 

제자리에서 기대되는 제 몫을 다 하는 의사, 그러지 못하더라도
제 역할을 다 하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된 후 달라진 것들

이경석 교수에게 의사는 처음부터 정해진 진로가 아니었다. 문과생이었던 그는 대학에 들어간 뒤 고시를 준비할 생각으로 먼저 군 복무를 시작했다. 생각이 달라진 것은 군 생활을 하면서였다. 여러 경험을 통해 의료와 의사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IMF 직후의 어려운 사회 분위기 속에서 진로를 고민한 끝에 의사의 길을 선택했다.


전공을 정할 때는 생명과 직결된 환자를 돌보는 과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을 뿐, 어느 과를 택할지는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주변 동기들로부터 종종 들었던 “소아를 잘 볼 것 같다”는 말이 떠올랐고, 마침 친한 동기도 함께 소아청소년과를 해보자고 권했다. 여러 고민 끝에 그렇게 소아청소년과 의사의 삶이 시작됐다.


정작 전공의 생활을 시작하고 첫 2~3개월은 생각이 많았다. 왜 평생 아픈 아이들을 보며 지내는 일을 선택했을까 싶을 만큼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쌓이면서 생각도 달라졌다. “아이들은 일단 귀엽지 않습니까?”라고 웃으며 말할 만큼 아이들이 좋아졌고, 어느새 진료에서도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전공의를 마칠 무렵, 지도교수님의 권유로 알레르기호흡기 분과를 선택했다. 여기에 자신처럼 알레르기비염과 아토피피부염으로 고생하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도 더해졌다. 이후 몇 년간 소아응급실에서 아이들을 만나며 그의 관심은 진료실 밖으로도 자연스럽게 확장됐고, 어느새 세상을 바라볼 때도 ‘아이들의 눈높이’를 먼저 생각하게 됐다.



 



진료실에서 실천하는 '최선'

이 교수는 의료자원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제대로 닿는 사회에 관심이 많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의료는 거창한 데서 시작하지 않는다. 매일 환자를 마주하는 진료실에서 자신이 아는 의학 지식과 병원이 가진 자원을 충분히 활용해 눈앞의 환자에게 필요한 진료를 제공하는 것. 그것이 이 교수가 생각하는 의사의 기본이다.


“환자를 볼 때는 내가 아는 최선의 의료를 제공하자는 생각을 합니다.”


의사 생활 초기에 만난 한 환자는 그에게 ‘최선’의 의미를 오래도록 기억하게 한 사람이다. 신경외과 인턴 시절, 뇌졸중으로 재활치료를 받던 환자의 배뇨를 돕는 일을 맡았다. 환자에게는 자신이 당직이 아닌 날에도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불러 달라고 이야기했고, 밤중에 연락이 오더라도 시간을 가리지 않고 병실로 향했다.

로테이션을 마칠 무렵, 보호자는 고맙다는 편지와 함께 밑반찬 한 가방을 건넸다. 평소 이야기를 나누며 그가 자취한다는 말을 기억해 두었다가 챙겨준 것이었다.


대단한 치료 성과를 거둔 순간도, 특별한 의술을 발휘한 일도 아니었다. 다만 환자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해 기꺼이 내어준 시간과 수고를 누군가 알아봐 준 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때의 기억은 선명하다. 이 교수는 가끔 그 환자가 지금도 잘 지내고 있을지 떠올려 본다.


 


 

의료의 빈틈을 찾아가는 연구

이 교수는 진료실에서 만나는 한 명의 환자를 넘어, 더 많은 아이들이 적절한 의료를 받을 수 있는 방법에도 관심을가져왔다. 보건학 석사(MPH)를 취득하고 공공데이터를 활용한 소아알레르기와 보건학적 연구를 꾸준히 이어온 이유다. 특히 사회·경제적 여건에 따라 아이들이 받는 의료에 차이가 생기지는 않는지, 한정된 의료자원을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연구를 통해 확인하고자 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데이터를 활용한 소아천식 연구도 이러한 관심에서 출발했다. 사회경제적 계층에 따라 환자를 나누어 분석한 결과, 의료급여 환자군에서 천식으로 응급실을 찾거나 입원하는 경우가 더 많았고, 중환자실 입원 위험도 높게 나타났다. 같은 질환을 앓는 아이들이라도 놓인 환경에 따라 치료 과정과 결과에 차이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실제 데이터로 확인한 것이다. 


이 연구가 반가웠던 까닭은 논문 한 편을 더 썼기 때문이 아니었다. 경제적 여건에 따른 의료 격차를 줄이려면 어디에 자원을 더 써야 하는지 보여주는 근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이 교수가 이 연구에 남다른 의미를 두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구 결과는 의료 격차가 어디에서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줄이기 위해 의료자원을 어느 곳에 더 집중해야 하는지 판단할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 연수 대신 다시 수련생으로

연수를 앞두고 이 교수는 해외가 아닌 서울대학교병원을 택했다. 목적도 견학이나 연구가 아니었다. 소아심장을 새로 배우기 위해서였다.


결정의 배경에는 지역 의료현실이 있었다. 소아청소년과 신규 전문의가 크게 줄면서 2차병원에서는 세부 분야 전문의를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특히 신생아집중치료실을 지원하

고 가와사키병을 비롯한 심장질환을 진료할 소아심장 전문의는 찾기 힘들었다. 소아청소년과 과장으로 4년 동안 채용을 위해 애썼지만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고민 끝에 생각을 바꿨다.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면 자신이 배우기로 했다. 서울대학교병원 소아심장분과 교수님들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받아주셨다. 그래서 해외연수 계획을 접고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소아심장 분야를 수련했다. 이미 알레르기호흡기 분과 전문의이자 교수였지만 새로운 분야에서는 다시 배우는 사람이었다. 자신보다 젊은 의료진과 중환자실, 응급실에서 근무하고 당직을 서며 심초음파와 심장시술 보조를 익혔다. 체력도 예전 같지 않았고, 배움이 더뎌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는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그 기간은 소아심장 지식만 익힌 시간이 아니었다. 여러 진료과가 긴밀하게 협력하는 모습, 긴박한 상황에서도 환자와 보호자에게 마음 쓸 여유를 잃지 않는 교수님과 의료진을 가까이에서 보며 자신의 생활도 돌아봤다. 수련을 마친 뒤에는 연구실의 책장과 물건 배치부터 다시 손봤다.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껴 진료와 연구에 더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두 분야를맡게 된 만큼, 두 배로

이제 이 교수는 알레르기호흡기와 소아심장, 두 분야의 환자를 진료한다. 매주 심장클리닉과 심장초음파 진료를 하고 신생아중환자실에서도 심초음파를 시행한다. 그 밖의 진료시간에는 알레르기호흡기 환자를 주로 만난다.


공부할 것도 자연히 늘었다. 주말이면 두 분야의 학술대회와 연수강좌를 찾아다닌다. 심장질환을 가진 아이와 보호자, 이들을 돌보는 의료진의 현실을 직접 경험한 뒤에는 연구 주제도 넓어졌다. 앞으로는 소아심장 분야에서도 보건학적 연구를 진행해 어떤 곳에 의료자원이 더 필요한지 근거를 찾을 계획이다.


바쁜 생활을 받쳐주는 힘은 가족과 동료다. 늦은 귀가와 당직에도 늘 응원해 주는 가족이 있고, 서로 당직을 나누며 버티는 소아청소년과 동료 교수들이 있다. 혼자만의 시간에는 묵상과 운동을 한다. 한동안은 복싱과 수영, 마라톤도 즐겼는데 다시 10km 달리기를 시작해 볼 생각이다. 이 교수는 좋은 의사란 무엇보다 자신의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맡은 분야에서 최선의 진료를 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에 못지않게 아픈 아이와 부모의 마음을 살피는 일도 중요하게 여긴다. 진료 중 생긴 의문을

연구로 이어가고, 그 결과를 더 나은 의료에 보태는 것 역시 교수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의 선택이 모두 계획대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문과생이었던 그는 뒤늦게 의대에 진학했고, 고민 끝에 소아청소년과를 전공했다. 교수가 된 뒤에는 소아심장을 배우기 위해 다시 수련을 받았다. 상황은 달랐지만 선택의 바탕에는 늘 같은 마음이 있었다. 필요한 일이 있다면 피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몫을 다하는 것. 이 교수는 앞으로도 그런 의사로 남고 싶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