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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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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 같은 방향으로 끝까지 함께하는 진료 - 소화기내과 안지현 교수

작성일
2026-06-01

[소화기내과 안지현 교수]

 

간질환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대부분
이미 오랜 시간을 병과 함께 보내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순간은 환자가

지나온 시간을 함께 이해하고 앞으로의 시간을 함께 준비하는 과정에 가깝다.

안지현 교수의 진료는 그 흐름을
놓치지 않는 데에서 출발한다. 치료를 위한
판단을 내리는 동시에, 그 판단이 환자의 삶 속에서
어떻게 이어질지를 생각하는 것.
그래서 안지현 교수에게 진료는

한 번의 결정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 긴 시간을 함께 건너가는 과정이다.

 

진료는 그 시간을 어떻게 함께 지나가는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환자와 함께 걷는 동반자로 남고 싶습니다.

 

 

한마디에서 시작된 길

안지현 교수가 의사의 길을 걷게 된 것은 거창한 결심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과학고에 재학하던 시절, 다양한 진로를 두고 고민하던 시기에 부모님이 건넨 한마디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타인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업이라는 말이었다. 막연하던 선택의 방향은 그 문장을 계기로 조금씩 또렷해졌다.
내과를 선택한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그중에서도 소화기내과, 특히 간질환 분야는 한 번의 치료로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간염에서 간경변, 간암으로 이어지는 경우라면 환자는 긴 시간을 병과 함께 살아가야 하고, 의사는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판단하고 선택해야 한다.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환자의 시간을 함께 지켜보고 이어가는 일이 되는 것이다.
간질환 치료는 정해진 하나의 해답이 있기보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다양한 치료 방법을 조합해 나가는 과정에 가깝다. 수술, 시술, 약물치료가 서로 다른 시점에서 연결되며 하나의 방향을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환자 상태에 따라 치료법을 조합하는 과정이 중요하죠.
이 과정은 마치 하나의 예술과도 같습니다.”
안 교수의 말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는 뜻이 담겨 있다. 같은 질환이라도 환자마다 몸의 상태와 살아온 시간이 다르고, 그에 따라 선택의 방향도 달라진다. 그래서 치료는 하나의 공식으로 완성되지 않고, 여러 가능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환자에게 가장 맞는 방법을 조심스럽게 만들어가는 과정에 가깝다.
결국 안 교수에게 치료란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에게 맞는 답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지치지 않도록 곁에 머무는 일

안 교수가 간질환을 진료하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치료의 성과보다 ‘지속의 힘’이다. 치료가 길어질수록 환자와 보호자는 점점 지치기 쉽고, 그 시간은 단순히 의료적인 과정이 아니라 삶의 무게로 다가온다. 반복되는 검사와 치료 그리고 예측하기 어려운 경과 속에서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들도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환자가 자신의 병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결과를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고, 다음 선택을 하기까지 망설임이 길어지는 순간도 많다. 때로는 설명보다 침묵이, 판단보다 기다림이 더 필요한 순간도 있다. 그럴 때 조급하게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환자의 속도에 맞춰 함께 걸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환자분들이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특히 간암이 재발하는 순간은 환자에게 큰 좌절로 다가온다. 그동안의 치료 과정을 지나왔음에도 다시 같은 상황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고, 그 무게는 말로 다 설명하기 힘들다. 그런 순간일수록 남아 있는 치료의 가능성을 하나씩 짚어주고, 여전히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차분히 전한다. 희미해진 방향을 다시 또렷하게 잡아주는 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힘든 순간에도 여전히 치료 방법이 있다는 점을 설명하는 데 집중합니다.”
절망의 순간에서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다시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돕는 것. 때로는 그것이 치료 이상의 의미를 갖기도 한다. 안 교수에게 진료는 병을 다루는 일을 넘어 그 시간을 끝까지 함께 버텨내는 일에 가깝다.

 

 

오래 남는 것은 결과가 아닌 순간들

오랜 시간 진료를 이어오다 보면 수많은 환자들이 스쳐 지나가지만 그중에서도 유난히 또렷하게 남는 장면들이 있다. 반복되는 출혈로 여러 차례 입원을 거듭하던 환자가 힘든 시술 과정을 견딘 뒤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가던 모습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반대로, 반복되는 복수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마땅한 치료 방법이 없어 같은 과정을 되풀이해야 했던 환자의 시간은
쉽게 잊히지 않는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그 시간 속에는 의료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고민과 함께 그럼
에도 끝까지 함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담겨 있다. 서로 다른 결과를 마주했지만 한쪽에는 회복으로 이어진 안도의 순간이, 다른 한쪽에는 여전히 남아 있는 한계와 질문이 함께 남는다. 그 두 기억은 의사로서의 보람과 동시
에, 아직 도달하지 못한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일깨운다.
“진료는 단순히 결과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어떤 치료를 했는지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얼마나 함께 고민했는지, 그리고 그 시간이 환자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도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판독 영상을 마주하게 될 때 내 앞에 환자가 있다는 마음으로 하게 됐죠.”

 

더 깊이 바라보는 시선

안 교수에게 프랑스 파리 INSERM에서의 연수는 그동안의 생각에 또 다른 깊이를 더해준 시간이었다. 이곳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간종양 유전체 연구기관으로, Jessica Zucman-Rossi 교수와 Jean-Charles Nault 교수를 중심으
로 유럽 각지의 연구자들과 함께 연구를 수행했다.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마주한 연구 현장은 속도보다 방향 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었다. 결과를 빠르게 만들어내
는 것보다 충분한 토론과 고민을 통해 하나의 가설을 다듬
고 데이터를 해석하는 과정 자체에 더 많은 시간을 들였다.
“한국에서는 빠른 결과를 내는 데 집중했다면, 프랑스에서
는 연구 가설을 충분히 토론하고 결과를 깊이 있게 해석하
는 과정의 중요성을 더욱 깨닫게 되었습니다. ”
연구 결과를 단순히 도출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어떻게 전
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역시 중요한 과정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논문에 실을 그림을 함께 수정하며 ‘인상파 작품
같다’는 평가를 들었던 순간은, 연구가 단순한 데이터의 나
열이 아니라 해석과 표현까지 포함하는 작업이라는 점을
실감하게 했다.
이 경험은 안 교수가 의학을 바라보는 태도로 이어졌고, 결
국 좋은 연구와 진료는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낼 때 완성된다는 점을 깨닫게 했다.

 

더 넓게 바라보는 시선

프랑스 파리에서의 연수는 안 교수에게 연구 이상의 의미
를 남겼다. 그곳에서 마주한 연구 환경은 결과를 빠르게 도
출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하나의 데이터를 다양한 관점에
서 바라보고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있었다. 방대한 조직 샘플이 체계적으로 수집되고, 여러 연
구자들의 시선을 거치며 새로운 의미로 이어지는 흐름은
인상적이었다. 연구가 개인의 역량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
라 구조와 시스템 속에서 더 넓게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을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었다.
그 경험은 자연스럽게 진료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이어졌
다. 환자의 임상 정보 역시 단순한 기록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이해하고 확장할 수 있는 하나의 출발점이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질환이라도 환자마다 다른 시간
과 조건 속에 놓여 있기 때문에 하나의 기준으로 설명하기
보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하다
는 점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 것이다.
진료실을 벗어난 시간 또한 그 시선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
었다. 안 교수에게 가족과 함께한 여행과 일상, 그리고 책과
전시를 통해 접한 다양한 표현과 해석은 기존의 틀을 벗어
나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현대미
술이 보여주는 자유로운 시선은 정답이 아닌 가능성 속에
서 방향을 찾아가는 진료의 과정과도 닮아 있었다.
결국 안 교수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의 정답을 정확히 찾아
내는 능력만이 아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환자를 이
해하고, 그에 맞는 선택을 함께 만들어가기 위해 더 넓게
바라보는 시선을 갖는 일이다. 다양한 경험과 고민을 통해
확장된 안 교수의 시선은 오늘의 판단을 더욱 깊고 단단하
게 만든다. 그리고 안 교수는 오늘도 환자 한 사람에게 가
장 맞는 답을 찾아가는 일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