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학교의료원 의료진의 ‘喜怒哀樂’.
의사로 살아가는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치유하고 지탱하고 새로운 길을 여는 안내자, 고성호 한양대학교구리병원 신경과 교수
글. 곽한나 / 사진. 정준택
고성호 교수는 지난 2013년 8월부터 1년동안 미국 하버드대학교에 연수를 다녀왔다. 뇌경색, 치매 치료법의 일환으로 줄기세포에 관해 꾸준히 관심을 가졌던 그가 본격적인 실험을 위해 미국행을 택한 것이다.
“뇌경색이 있는 환자의 신경 줄기세포가 회복과 재생에 기여를 해야 하는데 실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거든요. 신경 줄기세포의 재생을 억제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미국에서의 1년간 연구를 통해 특정 단백질이 신경 줄기세포의 회복 기능을 억제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어요.”국내에 돌아온 고성호 교수는 이 연구 결과를 2014년도 대한신경과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발표해 최고상인 ‘논문우수발표상’을 수상했다. 신경 줄기세포를 이용해 신경 재생과 후유증을 개선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고성호 교수의 연구 성과가 국내 학계에서도 높은 평가와 기대를 받은 것이다.
“영어로 발표하는 세션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수상에 뿌듯했어요. 현재는 단서를 찾은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인을 밝혀냈으니 앞으로 회복 기능을 막는 이 단백질을 억제하는 물질이나 방법을 지속적으로 연구해야죠.”
임상과 연구 교수를 겸하는 국내와 달리 하버드대학교에서는 진료만 전담하는 교수와 의사임에도 학자처럼 연구에만 집중하는 교수가 따로 분리돼 있다고 한다. 고성호 교수는 진료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무척 부러웠다고 말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의학 연구를 지원하고 연구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문화가 부러웠습니다. 대학병원의 수익이 걱정된다고요? 오히려 병원 진료와 관계없이 특허와 사업, 연구비 분야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내는 대학 중의 하나가 바로 하버드대학교입니다.”
웃으며 전하는 그의 말에 뼈가 담겨 있었다.
초등학교 1~2학년 시절부터 위인전 ‘슈바이처’를 읽고 슈바이처 같은 의사가 되고 싶었던 고성호 교수는 학창시절을 보내며 단 한 번도 의사 외에 다른 꿈을 가져본 적이 없다. 우직하게 꿈을 키워온 그의 저력은 의사가 된 이후에도 대학 교수라는 또 하나의 꿈을 이루게 만들었다.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살아왔어요. 꿈이 있으니 목표를 세우게 되고, 목표가 있으니 노력하게 됐죠. 덕분에 100%의 완벽한 만족은 아니더라도 꽤 많은 부분을 성취할 수 있었습니다.”
의과대학에 진학한 고성호 교수는 전공의와 인턴 과정을 거치며 신경과를 택했다. 뇌졸중, 파킨슨병, 알츠파이머와 같은 희귀 난치성 질환들을 다루는 분야다. 여기에도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신경과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연구 분야가 굉장히 많아요. 모험심이랄까요? 연구를 통해 제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서 신경과로 정하게 됐어요. 어떤 질환의 원인이 되는 기전을 밝혀서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면 더 많은 분께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부족한 능력이지만 제가 나름대로 열심히 연구하는 원동력이기도 하죠.”
의사가 되어 환자를 보기 시작한 지 18년이 되었다는 고성호 교수는 연구뿐만 아니라 진료에도 극진한 마음을 쏟는다. 다양한 경험으로 익숙해질 법도 한데 환자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한결같이 꼼꼼하고 조심스럽다. 매일 환자를 만나기 전 환자를 위해 기도한다는 그는 의사의 진단 착오나 작은 실수에도 환자의 생명이 달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의 진심을 알아보는 것도 역시 환자다. 4~5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진 어르신 환자는 세 달에 한 번씩 외래진료 때마다 직접 키운 채소와 생필품을 들고 찾아온다. 고마움을 표시하는 어르신의 따뜻한 정 때문에 그 역시 웃음으로 받아 든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그런 것 같아요. 요즘 같은 때에 이런 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참 소중하고 행복합니다. 늘 컨디션이 좋을 수는 없지만 환자분을 대할 때에는 최대한 평온한 상태로 진료에 임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요즘 신경질환 분야의 최대 이슈는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와 조기 진단 분야이다. 두 분야 모두 고성호 교수가 현재 하고 있는 연구와 관련이 깊다. 그야말로 대세를 ‘따르고’, 이슈를 ‘이끄는’ 중인 것이다. 치매나 파킨슨병 등의 질환은 진단이 될 시점이면 이미 병이 많이 진행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뇌의 80%이상이 손상돼야 증상으로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노인성질환으로 알려져 있지만 가족력이나 알코올 중독 등으로 젊은 이들에게 발병하기도 한다. 신경계 조기 진단 분야가 점점 중요해 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방치하면 환자가 될 수 밖에 없는 분들을 사전에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 그리고 치매나 파킨슨병 등을 예방 가능한 질환으로 변화시키는데 필요한 연구들을 진행하고 싶어요. 줄기세포 연구라고 해서 윤리적인 문제를 걱정하는 분도 있지만 저는 배아줄기세포가 아닌 성체줄기세포를 연구 중입니다. 제 환자가 좋아져서 퇴원하는 모습도 보람있지만 앞으로 보다 많은 분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신경계 진단과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결과를 선보이고 싶어요.”
슈바이처처럼 인류를 위해 헌신하는 의사의 꿈을 키워 온 고성호 교수. 슈바이처가 비단 아프리카 오지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늘 환자의 곁에 머물러 치유하고 지탱해주며, 평생 질환의 고통을 안고 사는 이들을 위해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길을 열어 줄 치료법을 연구하는 그의 모습도 슈바이처만큼이나 숭고하고 아름답다.
2015.07.01
1644-9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