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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의술의 만남 - '황반변성&안과', 에드가 드가(Edgar Degas)

깊어가는 어둠 속에서 빛을 그리다.

조희윤 교수프랑스의 천재적인 인상파 화가 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34~1917)는 1870년 프로이센 프랑스 전쟁 참전 당시 사격연습 중에 오른쪽 눈의 중심 시력저하를 깨닫게 된다. 36세의 일이었다. 전쟁에서 돌아와 치료를 받고자 하였으나 점차 왼쪽 눈도 시력이 소실되어 갔다. 그의 초기 작품에서는 미세한 그림자, 인물의 얼굴표현, 근육의 움직임 등이 세밀하게 표현되었으나, 후기로 가면서 거친 검은색 윤곽과 다소 굵직한 그림자 라인들이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우리는 그의 시력저하가 심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글. 조희윤 교수 한양대학교구리병원 안과

 

빛을 그린 화가, 시력 소실의 이유

발레수업 1873-1876

발레수업, 1873-1876

전쟁이 끝나고 파리로 돌아온 드가는 우울한 기분을 숨기지 못한다. 끊임없이 자신의 시력에 대해 불평을 했으며,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드가는 자신의 시력저하 상태에 집착하는 편이었으며, 실명에 대해서도 자주 언급했다. 계속해서 진행되어간 드가의 시력 소실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시력에 중요한 부위인 황반의 질환을 앓았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황반은 중심 시력의 저하를 초래하기 때문에 황반변성을 앓게 되면 보고자 하는 중심부의 형태가 왜곡되거나 흐리게 된다. 기록에 따르면 드가의 모계 사촌인 에스텔 뮈송(Estelle Musson)도 양안의 점차적인 시력저하를 겪었다고 한다. 현대 안과의사들은 드가가 망막변성의 경과를 겪은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망막변성에는 감염, 독성, 혈관질환 등 아주 다양한 원인이 발생할 수 있으나 사촌이 같은 질환을 젊은 나이부터 앓기 시작한 점 등에서 유전성 망막질환에 무게를 두고 있다. 여러 가지 정황상 가장 가능성 큰 질환으로 ‘열성유전 원 풀이영양증(Autosomal recessive cone dystrophy)’으로 추측되지만, 질병 가계도가 유전방식에 잘 일치되지 않는다.

발레 무대, 1904-1906

발레 무대, 1904-1906

에드가와 에스텔이 같은 유전성 망막질환을 앓았다면, 에드가는 조금 더 가벼운 형태로, 에스텔은 좀 더 심한 형태로 나타난 것 같다. 황반부의 손상 정도와 진행속도는 같은 가족 내에서도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대부분 눈부심을 심하게 느끼며, 시력과 시야의 손상과 함께 색각이상이 동반한다. 이런 증상 때문인지 드가는 실내의 침침한 조명 밑에서 작업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드가가 파리의 새로운 스튜디오로 이사했을 때, 큰 창문을 모두 커튼으로 가리고 지낸 것도 그 이유이다. 안타깝게도 그 당시에는 드가의 안저 사진뿐 아니라, 망막질환의 원인을 밝히기 위한 전기생리학적 검사가 가능하지 않았으며, 안저에 대한 기록도 많이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나폴레옹 3세 왕족을 포함한 부유한 귀족들의 안과 검진을 하던 안과의사가 당시 유명해진 드가의 안저검사를 시행하게 됐고, ‘망맥락막염(Chorioretinitis)’이라는 진단을 붙였다. 그러면서 망막과 맥락막의 변성을 기술하였다. 이것은 유전성 망막질환이 망맥락막염으로 보여진 것으로 생각된다. 약간의 상상력을 동원하자면, 진단법이 제한적이던 당시 망맥락막염의 경우 매독성 망막염 소견과 유사하므로, 드가의 명성과 명예를 고려해서 소견을 간단하게만 기술한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아마도 유전성 망막질환 중 비교적 대수롭지 않아 망막변성이 국소적이었지 않았을까 싶다.

유전성 망막질환, 황반의 ‘변성’에 대하여

세 명의 무용수, 1898

세 명의 무용수, 1898

망막은 빛을 신경 신호로 바꾸는 신경 감각조직이며 시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담당한다. 유전성 망막질환(Inherited retinal diseases)은 양쪽 눈에 발생하며 영구적으로 시력을 잃게 되는 난치성 안과 질환이다. 이 질환은 저시력 환자의 재활을 목적으로 하는 시각 재활센터에 등록된 환자 중 2/3 이상을 차지하며 양안 실명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황반변성은 황반(Macula)이 변성(Degeneration)되는 질환이다. 변성은 병리해부 학적인 퇴화, 퇴보의 의미를 포함한다. 고도로 높은 기능의 조직이 낮은 기능의 조직으로 변하는 경우를 말하며, 빛을 감지할 수 있는 세포인 황반부의 광수용체들이 빛을 볼 수 없는 흉터(Scar) 조직으로 변한다면 이는 변성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황반부위에 변성이 발생하였다는 말은 ‘빛을 맞이하는 고도의 기능을 가진 황반부 위가 퇴화하여 빛을 보는 기능을 소실했다’는 의미로, 드가의 증상이 바로 황반부의 변성이 발생하였을 때의 증상이라 볼 수 있다. 황반이영양증은 여러 종류의 질환이 포함된다.

대부분 원인을 알 수 없는 유전적 성향이 강한 질환들이며, 비교적 젊은 나이에 발생한다. 유전적으로 결정된 예정된 시력의 장애이며, 예방하는 방법과 치료하는 방법이 없기에 과거에는 절망적인 질환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유전자치료, 줄기세포치료 등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에게 난치성 안과 질환이었던 유전성 망막질환에 밝은 빛이 보이지 않을까 기대한다.

예술과 의술의 만남 | 명작을 남긴 화가의 질환이 작품과 삶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 오늘날의 치료법에 대해 알아봅니다.

2016.03.02

태그

#황반변성 , #조희윤 , #안과 , #망맥락막염 , #망막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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