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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상・소설가 김유정과 폐결핵

결핵이 휩쓸고 지나간 비운의 시대 한국 문학의 두 천재 이야기

 

글. 김태형 교수 한양대학교구리병원 호흡기내과

시인 이상 / 소설가 김유정 폐결핵

데카르트, 칸트, 스피노자, 도스토예프스키, 발자크, 조지 오웰, 카프카, 쇼팽, 나이팅게일… 이 다방면의 천재 혹은 위인들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모두 폐결핵으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을 계기로 전 유럽을 휩쓸며 인류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결핵은 기원전 7천 년경 석기시대의 화석에서 발견된 이후, 현재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인류를 괴롭혀 왔으며, 우리나라의 소설가 김유정과 천재 시인 이상(李箱)도 결국 결핵의 희생양이었다.

1913년대 한국 문학의 불우한 두 천재인 김유정과 이상은 불우한 어린 시절부터 폐결핵으로 사망까지 여러 면에서 공통된 삶을 살았다. 소설가 김유정은 강원도 춘천에서 1908년 2월 12일 태어나 1915년 어머니를, 1917년 아버지를 잃고 정신적 충격으로 말을 더듬게 되었고 이상은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몰락한 양반인 백부에게 입양되어 엄격한 유교 교육 등으로 힘든 유년시절을 보냈다. 이러한 성장기의 결핍과 고난은 두 천재에게 ‘운명공동체’라는 절절한 연대감을 느끼게 했다고 한다.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다니다 제적된 김유정은 1931년 고향 춘천으로 낙향한 이후 야학 활동에 집중했다. 이때 겪은 일제 치하의 궁핍한 농촌 현실을 바탕으로 1933년 이후 농촌과 도시의 밑바닥 인생들을 <총각과 맹꽁이>, <소낙비>, <노닥지>, <동백꽃> 등의 소설에서 그려낸다. 이상은 백부의 바람대로 보성고등보통학교와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나와 건축 기사로 일하는 와중에도 1930년 조선지에 연재된 장편 소설 <12월 12일>로 문학계에 데뷔했으며, 1931년 7월 <이상한 가역반응>이라는 첫 시집을, 그 해 8월 시 ‘조감도’와 ‘삼차각설계도’를 <조선과 건축>에 발표했다. 또한 소설 <지도의 암실>,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내며 활발한 활동을 했다.

두 천재의 주요 교류무대였던 구인회는 1933년 8월 당시 문단의 중견작가 9명이 모여 만든 문학 친목단체였다. 이 두 천재는 1935년 봄, 김유정의 신춘문예 당선 축하연에서 처음으로 만났다고 한다. 구인회의 멤버로서 친분을 쌓게 된 둘은 술을 좋아했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폐결핵으로 오랜 동안 고생하다 비슷한 시기에 숨을 거두게 된다. 이상은 1931년 한 공사 현장에서 처음 각혈하며 쓰러졌고, 폐결핵으로 계속 고생하던 중 1933년 황해도로 요양을 떠났으나, 온전한 건강을 찾을 수 없었다. 김유정은 1936년 7월 과음과 밤을 새우는 집필로 인한 피로, 흡연으로 인해 폐결핵이 악화되었다가, 서울 정릉 부근의 암자에서 술과 담배를 끊고 요양하며 일시적으로 병세가 호전되기도 했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1936년 가을 어느 날 촛불 아래에서 글을 쓰던 김유정에게 이상이 찾아왔는데 “각혈이 어떠십니까?”, “그저 그날이 그날 같습니다.”, “치질이 여전하십니까?”, “그저 그날이 그날 같습니다.” 라는 대화 이후 이상이 동반자살을 제의했는데 이때 김유정이 앙상하게 뼈가 드러난 앞가슴을 풀어헤치며 “이것 좀 보십시오, 명일의 희망이 이글이글 끓습니다.”라고 대답하며 이상의 제안을 거부했다고 한다. 이후 이상은 이 장면에 대해 자신의 소설 <실화>에서 “유정! 유정만 싫다지 않으면 나는 오 늘밤으로 치러버리고 말 작정이었다. 한 개 요물에게 부상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27세를 일기로 하는 불우의 천재가 되기 위해서 죽는 것이다. 유정과 이상이 신성불가침의 찬란한 정사……” 라고 표현했다.

김유정은 1937년 2월 경기도 하남에서 요양을 했는데, 이 시기 동창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날로 몸이 꺼진다.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밤에는 불면증으로 괴로운 시간을 원망하고 누워있다. 맹열이다.”라고 표현했다.

결국 1937년 3월 29일 스물 아홉에 폐결핵으로 숨을 거뒀다. 또한, 그가 죽은 지 19일째 이상도 4월 17일 일본 동경제대부속병원에서 폐결핵 악화로 눈을 감았다. 돌아보면 일제 강점기 지식인들은 가난으로 인한 영양결핍, 나라와 체제에 대한 분노로 술과 담배에 빠지기도 하여, 폐결핵 환자가 많았다. 흡연, 영양결핍, 만성 음주로 인한 간기능 이상 등이 결핵 발병 및 악화에 대한 주요 인자였음을 알 수 있다.

결핵은 모든 문명과 국가에서 유행했으나, 오랜 기간 불치의 병이었다. 19세기 중엽이 되어서야 유전병이 아닌 전염병임이 증명되었고, 1882년에야 결핵균이 발견되었다. 결핵균의 발견 이후에도 1943년 스트렙토마이신이 개발되기 전까지 효과적인 치료제가 없었다.

우리나라 2018년 결핵 발생률은 인구 10만 명당 70.0명(OECD 평균 11.0)이며 결핵 사망률은 10만 명당 5.0명(OECD 평균 0.9)으로 OECD 회원국 내에서 독보적인 1위이다. 그럼에도 2010년부터 시행된 국내 민간공공협력 결핵관리 사업의 영향으로 민간의료기관의 결핵치료 성공율을 높이고 있으며, 2011년 이후로는 실제 결핵 발생률과 신환자수도 매년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다. 폐결핵 환자 중 70~80% 정도에서 호흡기 관련 증상을 보이지만, 감기 등 기타 질환과 구분이 어려워 초기 발견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성인 폐결핵 환자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증상에는 기침, 객담(또는 혈담), 발열(미열과 오한), 무력감(또는 피곤함), 체중감소 등이 있으며, 특히 기침이 2주 이상 지속되고 열이 나며 기침 증상이 밤에 더 심해질 경우, 결핵을 의심할 수 있다. 확진을 받기 전까지 주변사람들에게 결핵을 전염시킬 가능성이 큰데, 이를 예방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전염성 있는 결핵 환자의 조기 발견 및 치료뿐이다.

고위험군(고령, 면역저하, 당뇨, 흡연, 결핵 환자 노출)의 경우 정기적인 흉부X선 검사가 필수적이며, 특히 결핵 환자의 중요 접촉자 및 특수시설(산후조리원, 어린이집, 유치원, 요양병원 등) 근무자, 단체생활(학교, 군대, 교도소 등) 대상자들에서의 잠복결핵 확인 등이 조기 발견 및 치료를 위해 국가 단위에서 시행되고 있다

 

202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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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기내과 -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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