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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 없는 사랑이 낳은 위대한 예술의 세계 - 뇌전증

한때 간질이라 불렸던 뇌전증(Epilepsy)은 2천년 전 <히포크라테스 전집(Corpus Hippocraticum)>에 언급될 만큼 오래 알려진 질환이다. 사회적 편견에 부딪혀 과거에는 ‘신의 형벌’, 또는 ‘악령의 저주를 받은 병’이라는 오해도 많았다. 유명한 위인 중에도 뇌전증을 앓았던 이들이 여럿 있는데 20세기의 독창적인 화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마르크 샤갈도 그중에 하나였다.

글. 최호진 교수 한양대학교구리병원 신경과

작품 세계의 큰 원동력이 된 부인의 사랑

마르크 샤갈(Marc Chagall)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은 1887년 7월 7일 벨라루스공화국의 비테프스크에서 유대인부부의 아홉 자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샤갈은 화가로서 그의 재능을 인정하고 격려해준어머니 덕분에 비록 가난했지만, 미술을 공부하며 비교적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다. 초창기에는 러시아의 성화와 민속예술의 성향을 뚜렷하게 보여주었고 이후 스승 레옹 바크스트의 권유로 파리로 이주하며 새로운 예술적 영감을 얻게 된다. 파리에 머문 이 시기에 야수주의, 입체주의, 오르피즘 등 새로운 작업방식에 영향을 받아 환상적이고 공상적인 요소가 지배적인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만들어냈다. 이때의 영향으로 프랑스식 이름인 ‘마르크 샤갈’로 개명했다.

샤갈의 작품 활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첫 번째 부인이었던 벨라 로젠벨트이다. 두 사람은 첫 눈에 서로 반해 결혼한 운명의 상대였다. 내성적인 성격에 말을 더듬고 종종 뇌전증 발작까지 일으켰던 샤갈이었지만 벨라는 편견 없이 그의 예술세계를 존중하고 이해했으며 보살펴 주었다.

벨라는 별명이 ‘침묵 공주’일정도로 평소에 말수가 적고 조용한 편이었지만 샤갈의 작품에 대해서는 분명한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 샤갈은 늘 벨라의 의견에 귀 기울였고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그림을 다수 남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의 대표작인 ‘마을 위’, ‘에펠탑의 부부’에서그들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하던 샤갈에게 2차 세계 대전은 큰 시련을 안겨준다. 나치 점령하에 있던 파리에서 유대인이었던 샤갈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고 결국 벨라와 함께 뉴욕으로 도피하게 된다.미국에서 그는 유럽에서 망명해온 다른 미술가들과 함께 작품을전시했고, 무대장치 디자인도 하면서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이어가지만 벨라와 함께 늘 파리를 그리워했다.

1944년 9월 아내 벨라가 갑자기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망하자 샤갈은 큰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자신의 그림 세계의 여신이며 인생의 동반자인 벨라를잃고 절망에 빠진 샤갈은 9개월간 붓을 들지 못했다. 그의 심정을잘 표현한 그림이 ‘과거에의 경의’이다. 푸른색의 어두운 분위기에서 상심에 겨운 샤갈의 심리를 확인할 수 있다.

독창적인 작품으로 승화한 뇌전증의 환시

좌절에 빠진 샤갈을 일으켜 세운 것은 다름 아닌 딸 이다(Ida)이다. 딸의 소개로 버지니아 해거드라는 젊은 여인을 만나기도 하고, 1952년에는 역시 딸의 소개로 만난 발렌티나(바바) 브로드스키와 두 번째 결혼식을 올린다. 샤갈은 새로운 여인들과의 인연으로 작품활동에 새로운 활력을 얻었지만, 늘 벨라를 언급하고 그리워했다.

샤갈은 1977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대십자 훈장을 받았고, 생존화가로 루브르 박물관에 작품이 걸리는 영광을 지켜봤다. 그는 생애 마지막 20년간 남프랑스의 생 폴드 방스에서 살았고, 1985년 97세의 나이로 그곳에서 사망했다.

오랜 시간 동안 작품활동을 하면서 현대 미술의 여러 사조를 접했지만, 어느 한 유파에 속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낸 샤갈은 화려한 색채로 시적인 호소력을 담아 상징적이고 미학적인 이미지를 구현해냈다. 그의 몽환적인 그림들은 초현실주의의 시작으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의 작품이 비이성적인 꿈을 그린 것이 아니라 실제의 추억들을 그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경과 의사 입장에서 샤갈의 작품과 이에 대한 샤갈 본인의 설명, 그리고 그가 뇌전증 환자였던 점을 고려하면 뇌전증 발작의 전조 증상으로 종종 나타날 수 있는 환시가 그의 작품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환시를 겪는 많은 뇌전증 환자들이 공포감 혹은 다시 겪기 싫은 불쾌감을 호소하지만 샤갈은 벨라와의 사랑 덕분에 이를 한 시대를 대표하는 미술 작품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뇌전증 환자였던 샤갈에 대해서 편견 없는 사랑을 베풀었던 벨라 덕분에 우리는 샤갈의 수많은 위대한 작품들을 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현대 의학의 발전으로 뇌전증 환자들은 더욱 효과적으로 관리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일부 난치성 뇌전증 환자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환자는 적절한 약물치료를 통해 충분히 정상적인 생활이나 직장 생활이 가능해졌다. 우리 사회도 근거 없는 뇌전증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이해와 사랑을 베풀어 뇌전증 환자들이 불편함 없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2017.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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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 - 최호진
태그

#뇌전증(소아) , #뇌전증(성인) , #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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